산수유농업의 지식체계

천년을 이어온 산수유 농업의 지식체계

산수유농업은 전통적으로 특별한 재배기술이 있는 것을 아니었으나, 처음에는 주민들이 30~40년 정도 된 산수유 고목에서 떨어진 종자나 가지에서 발아된 실생묘를 옮겨 심어서 번식시키는 초보적인 재배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산수유 묘목이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자연발아를 통해 산수유나무를 재배해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적인 나무의 번식은 산수유나무의 특성상 한계가 있으므로 지금의 대규모 산수유군락지는 주민들이 비배관리 등에 공을 들여 일구어온 결과물입니다.

산수유농업의 친환경적 재배기술로는 부산물을 이용한 전통방식의 산수유 시비법, 수형 조절을 위한 가지 묶기, 서리피해 방지를 위한 발연(發煙)법 등이 있습니다.

부산물을 이용한 전통방식의 산수유 시비법

산수유 같은 천근성 수종은 가뭄이나 퇴비 등의 영양분에 민감하여 종자와 상관없이 충분한 수분과 퇴비만 주어진다면 양질의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산동주민들은 가축분뇨와 인분을 이용한 시비 방법을 전통적으로 행해왔으며 특히 나무 한 그루당 합수통(장군) 한 토식을 뒤엎어서 인분이 겨우내 서서히 토양에 스미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소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가리나무’나 제초작업을 통해 얻은 풀, 산수유열매 씨앗 등을 산수유나무 밑에 뿌려 놓는 비배 방식이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화학비료가 보급되면서 산수유나무에도 일반적인 비료 시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형 조절을 위한 가지 묶기

산동지역은 산수유열매 수확 시 사람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지가 수평으로 퍼져 자라도록 땅이나 가지끼리 끈으로 고정해 두는 ‘가지 묶기’ 방식을 사용해 산수유나무의 수형을 조절·관리하고 있습니다.

서리피해 방지를 위한 발연(發煙)법

산동지역의 가옥들이 현대화되기 전에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땠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지역을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이러한 연기가 서시천 계곡을 타고 올라 산수유군락지까지 덮음으로써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로 인한 서리 피해를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선조들은 이러한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산수유나무를 마을 가까이에 심었으며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되면 평소보다 자주 불을 피워 연기를 냈다고 합니다.

산동면 대평리 반곡마을

산동면 대평리 반곡마을

재배과정

재배과정

비배관리

비배관리

전통방식의 산수유 수확 및 가공기술

산수유는 매년 10월 중후반부터 11월말까지 열매가 얼기 전에 수확합니다. 전통적으로 산수유 수확은 나무 밑에 짚으로 짠 덕석을 깔고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를 털어 모으거나 망태를 메고 올라가 직접 손으로 일일이 열매를 땄습니다. 이 때 나무와 나뭇잎이 몸에 닿으면 껄끄러워 사람을 괴롭히는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건조방식은 산수유열매의 상태에 따라 햇볕에 2~3일 정도 건조시켜 수분량을 줄여주고 온돌방에 널어서 열매의 수분량이 30~40% 정도(씨에 열매가 묻지 않을 정도) 남을 때까지 졸여줍니다. 졸여진 산수유열매는 씨와 과육을 분리하여 수분함량이 15~19% 정도가 될 때까지 햇볕에 말리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산수유 농사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업은 수확한 열매에서 씨를 발라내는 ‘제핵(際核)작업’으로 주로 아이들과 아낙네들이 도맡아서 했습니다. 겨울이면 상 위에 졸인 산수유열매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턱 아래 그릇을 받쳐 산수유 한 알 한 알을 입에 물고 앞니로 까서 그릇에 뱉는 작업을 반복해 씨를 분리했습니다.

이처럼 수확과 건조 과정이 거의 수작업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산수유 농사는 ‘고생길‘이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산수유 수확기와 탈피기가 공급되어 농가의 일손을 한결 덜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례 산수업 농업
돌담의 조성과 농업환경

산동면 산수유군락지에서 산수유나무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잘 보존된 돌담입니다. 고샅길(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접어들면, 집과 논밭의 경계에는 어김없이 오래된 돌들이 차곡차곡 얹힌 정겨운 돌담길이 구불거리며 펼쳐져 있습니다. 오래전 이 산촌 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터를 잡고 집을 짓거나 논밭을 개간하면서 생긴 돌을 이용하여 그 경계에 돌담을 쌓았고 이 돌담 사이로 마을길이 조성되었습니다.

돌담은 집 울타리 용도는 조금 높게, 논밭의 경계 표시용은 조금 낮게 쌓아 경계를 표시하고 나아가 집단적으로 재배한 산수유의 재배 환경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산수유군락지 내 돌들은 대기와 토양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여 봄 가뭄에 토양 속 수분 증발을 억제하고 산수유의 생육에 필요한 수분을 유지시켜줍니다. 또한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에 수평으로 넓게 퍼지는 천근성(淺根性) 수종인 산수유나무의 지지대 역할을 하여 강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재배환경을 형성해줍니다.

산수유 돌담1
산수유 돌담2
산수유와 관련된 농업문화

어려서부터 산동의 처녀들은 산수유열매를 입에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하여 앞니가 많이 닳아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도 산동처녀는 쉽게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또한 몸에 좋은 산수유를 평생 입으로 씨를 분리해온 산동처녀와 입 맞추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 낫다 하여, 인근 순천, 남원 지역에서도 산동처녀는 며느릿감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또한 산수유 과육 분리작업에 어린이들과 여인들이 모두 동원되었다는 데서 산수유농사가 마을 공동의 협업 시스템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때 일한 품삯을 계산해주던 대접(놋그릇, 사기그릇)이 집집마다 규격이 달라 그릇 크기가 곧 그 집 안주인의 품성을 나타낸다는 설이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산수유를 짚 덕석에 털어 수확한 후 근처에 흩어진 산수유 이삭을 줍기 위해 인근 용방면 등 타 지역에서 ‘이삭줍기’ 원정을 오는 문화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산수유 농사와 관련된 농기구로는 쟁기, 훑치기(밭을 가는 쟁기), 짚덕성(멍석), 꼴망태, 갈고리(장대), 키(챙이), 풍고, 채반, 장군(합수통) 등이 있으며 탈피작업과 관련되어 도리반상, 놋그릇, 사기그릇, 되 등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갈고리

갈고리

산수유 수확에 사용되는 갈고리

산수유 수확에 사용되는 갈고리

덕석

덕석

주민의 삶과 농업환경이 어우러진 독특한 지역문화 : 산동애가 - 현대사의 상처이자 산동 처녀들의 노동요

1948년~1955년 지리산은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싸움이 펼쳐진 주무대였습니다. 지리산의 울창한 숲과 암벽들은 빨치산에게 천혜의 요새가 되어 전투 당사자인 군경과 빨치산 2만명의 고귀한 목숨이 지리산의 능선과 계곡에 묻혔습니다. 또한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의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양민 수천 명이 함께 희생되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2만여 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현장이 된 것입니다.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생각나는 ‘산동애가’에는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이 산동애가의 주인공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열아홉살이던 산동면 상관마을 출신의 ‘백부전’(아명 : 백순례)이라는 처녀로, 오빠 대신 총살현장에 끌려가며 부른 슬픈 노래입니다.

이후 이 노래는 산동의 아낙네들이 늦가을 산수유 열매를 수확할 때나, 겨울철 산수유 열매를 도리반상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이로 씨를 발라내며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면서 불리던 노동요였습니다. 이렇게 두고두고 아낙네들의 일터에서 구전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산동애가」가 완성되었습니다. 2013년 조성 완료된 산수유 사랑공원에는 이 노래를 새긴 비석 조형물이 세워졌습니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로
까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 절며
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 마을 인심도 좋아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파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나혼자 총소리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산동애가 기념비
산수유와 음식 : 오줌싸개 아이들의 특효약
산수유 한약

전통적으로 산수유군락지 일원에서는 산수유를 이용하여 산수유차, 술, 효소를 담그는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산수유차는 보약을 달여 내듯 산수유와 대추, 곶감, 계피, 감초, 오미자, 인삼 등을 기호에 맞게 혼합하여 만들었습니다. 특히 산동주민들은 민간요법으로 ‘오줌싸개 아이들’의 건강식으로 산수유(300g)와 소고기(200g)를 가마솥에 넣고 삶아서 먹였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산수유열매의 신맛이 근육의 수축력을 높여 주고 방광의 조절 능력을 향상시켜 어린이들의 야뇨증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부 농가에서는 산수유 떡과 산수유 꿀도 만들어 먹었으나 일반적으로 산수유는 쌀, 채소와 다르게 지역 내에서 소비되기 보다는 열매 자체가 한약재로 높은 가격에 팔렸기 때문이 주민들은 음식으로 만들어 먹기보다 주로 시장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산수유식혜, 산수유묵, 산수유두부, 산수유강정, 산수유막걸리, 산수유화전 등 다양한 음식들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산동 사람들의 삶과 전통신앙

산동면에서 현재까지 계승해오고 있는 풍습으로는 당산제와 함께 달집태우기, 풍물놀이가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액운을 씻어내고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해마다 행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 대부분의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왔으나 현재는 2개 마을(상관, 우와)에만 남아있으며, 구례군 산수유축제추진위원회에서는 매년 산수유꽃축제 기간에 산수유 시목지(계척마을)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한편 산동주민들은 ‘산동면풍물단’을 구성하여 풍물놀이와 달집태우기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고 풍물놀이 문화를 전승해나가고 있습니다.

산수유 시목지에서 처음으로 풍년기원제를 지내는 모습(2001년)

산수유 시목지에서 처음으로 풍년기원제를 지내는 모습(2001년)

풍년기원제

풍년기원제